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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ever¿

소설의 지각 변동을 가져올 낯선 세상과의 만남, <스토리코스모스 소설선 2>

by 스네일핸즈 2024. 12. 5.

 

"스토리 코스모스 소설선 2"

 
  요즘 푹 빠져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취미가 세 가지인데 하나는 캠핑이고, 하나는 독서, 그리고 글쓰기이다. 내가 있는 익숙한 곳에서 멀어져서 낯선 세상으로 가는 방법은 직접 여행을 떠나거나 책에서 주인공 혹은 그가 가진 인생을 만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모험”이라는 단어로 함축하여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일에 대해서 오늘 말해보려고 한다. 

   캠핑에 가서 읽을 소설집으로 21세기 소설의 라이브러리, 스토리 코스모스에서 출간한 "스토리 코스모스 소설선 002"를 선택했다.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보니, 기대가 아주 남달랐다. 소설집에는 작가 11명의 작품이 담겨있었다. 
 
   사실주의 계열 소설 5편과 장르를 차용한 소설 6편, 총 11편이 책에 수록되어 있지만 모든 작품은 그 경계가 흐릿한 부분이 많았다. 어떠한 경계를 딱 나누어 카테고리에 넣지 않아도 될 만큼 현실과 판타지 영역을 자유로이 오가는 융합형 소설 그 자체였다. 어쩌면 있을 법한, 미래에 올 것이라 단정하는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하는 좋은 역할을 해주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다. 

   나는 이상한 버릇이 있는데, 마구잡이로 책읽는 순서에 제약을 두지 않고 있다. 아래의 작가 소개는 무작위에 따른 것이니(모든 작품 다 훌륭하다!) 순위가 아님을 밝혀둔다.

  장성욱 작가의 ‘티셔츠’ 
  판타지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현실적인 소설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상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어떤 다른 소설보다도 가장 진한 여운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놀랐다. ‘봐, 별것 아니지?’라고 사회에서 지친 이들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이아타 작가의 ‘인디고블루 청바지로부터’ 
  ‘다 끝났다’라고 시작하는 프랑스 소설을 언급하는 부분과 ‘마땅히 그래야 하는 세상이 마땅히 아니라는 말’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매우 흔하디흔한 청바지는 우리 모두를 지칭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서술에도 지루하지 않게 각자의 평범한 삶을 돌아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은 매우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조재민 작가의 ‘X에서 늙어 죽은 최초의 인간에 대한 보고서’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사들여 ‘X’라는 소셜미디어로 탈바꿈한 시점(현실)과 작가가 보여주는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더해서 한편의 흥미로운 투자 보고서 형식의 소설을 만들어 냈다. 명작은 결말을 알아도 다시 찾아본다는 말이 있다. 몇 번이고 찾아볼 명작이다. 
  
  도재경 작가의 ‘그가 나무 인형이라는 진실에 대하여’
  진실과 거짓이 가득한 현실이 배경이라고 생각하는 찰나 독자를 동화 속으로 인도해 버리는 결말이 인상 깊었다. 분명 소설의 마지막에 도달했으나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해 페이지를 넘겨보고, ‘끝난 건가.’ 5초 동안 멍하니 마지막 문장을 바라보면서 웃음 짓게 되었다. 작가의 다른 소설을 꼭 읽겠다고 다짐했다.

  박은비 작가의 ‘창(槍)’
  날카롭고 쐐기를 박는 나쁜 말들, 상대방의 상처를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가벼운 태도, 인간 사이에서 쌓인 갈등은 풀리지 않고 세상엔 화만 가득하다. 작가의 말을 통해 이 소설은 한 편의 동화라고 말했으나, 지극히도 현실적인 문제를 너무도 극명하게 그려내고 있어 감탄했다.

  방성식 작가의 ‘셸터’ 
  과거와 현재로의 전환이 아주 깔끔하게 전개된다. 죽음이 지천인데 왜 나는 살려고 하는가. 이 소설의 핵심이다. 모든 인장을 다 떼고 나서야 가볍게 사람답게 시작하는 힘. 이야기의 몰입감이 최상이었다. 군대 얘기 재미없다는 말 거짓말이다. 작가가 해주는 군대 이야기는 밤새 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김솔 작가의 ‘고독한 순환을 즐기는 검은 유체’
  매우 호흡이 긴 문장에 사로잡혀 읽게 되는 작품이다. 아득히 멀어져 갈 때쯤 작가는 책 속으로 불러들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누가 흑인인가. 비주류와 주류에 대해서 이토록 끔찍하고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검게 물든 활자 속에 갇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이시경 작가의 ‘나는 그것의 꼬리를 보았다.’
  단연코 색채에 대한 이야기를 이보다 박진감 넘치게 쓸 수 있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문장이 하나, 둘 모여 그것의 꼬리에서 소복하게 쌓인 눈을 지나 한옥의 역사까지 끌고 들어가는 사이, 나 역시도 그것과 마주 보고 있었다. 소설과 AI에 대한 고뇌 그리고 한국적인 색채를 담아 오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김덕희 작가의 ‘디에스 이라이’
  왜 이제야 이 소설을 마주했을까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었다. 와 여기서 비튼다고? 예측불허한 전개가 펼쳐지면서 소나타 변주곡이 떠오른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좋은 쪽으로 기가 막히다. 사람이 가진 분노를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누구나 한번 쯤 마음에 품었을 화를 속시원하게 긁어주는 작품이다. 

  임재훈 작가의 ‘공동’
  퇴사의 마음은 매일 출근하면서 품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 그만두라고 종용하면 저항심에 불타오를게 분명했다. 이 소설은 판타지가 맞다. 그렇지만 평범한 ‘회사’라는 배경과 캐릭터에 부여된 강력한 실제성으로 인해 등장하는 세 인물이 모두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작가의 말에서 “걍 됐고, 소설이야.”라고 할지라도, 그 누구든 주인공의 회사 속 모습을 보면서 ‘어? 난데?.’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게 분명하다.

  최이아 작가의 ‘당신도 조심하시오.’
  괴담, 괴물에 대한 해괴한 이야기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경성이라는 세세한 배경 설명과 주인공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판타지, 동성애, 시대로 이어지는 지점이 어색한 점 하나 없이 완벽하다. 소설선의 제일 처음에 등장하는 이 작품 속으로 푹~ 빠져들지 모르니 조심하길 바란다.

  “전문적 SF 영역의 소설들이 그 고유성의 심화로 독자와의 소통이 소원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판타지의 극한 영역 확장이 오히려 독자적 공감대의 영역을 줄어들게 만든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장르적 기법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사실주의적 융합형 소설의 확장은 한국 소설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이 아닐 수 없다.”

  스토리 코스모스(storycosmos)의 대표 에디터인 박상우 작가의 말이다. “스토리 코스모스 소설선 002”에 수록된 작품은 우리가 가진 기존의 사고 방식과 가치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작가와 독자가 ‘텍스트 상호작용’을 통해 작품의 의미가 더 이상 작가의 의도에 국한되지 않고, 독자의 해석에 따라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획기적인 사고 전환도 가능하다. 
 
  자극적인 짧은 쇼츠 영상을 쓱쓱 넘기면서, 쾌락을 발견하는 현대인들에게 우리의 기대에 부응할 때 느끼는 편안함과 만족감을 줄 수 있는 텍스트의 쾌락을 “스토리 코스모스 소설선 002”에서 만나보길 바란다. 독자에게 반전을 선사하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때 경험하는 전율과 흥분이 오롯이 전달해 줄 것이다.